[공유] [풋볼리즘W③] 축구전술 역명제의 혁명
[풋볼리즘W③] 축구전술 역명제의 혁명 시메오네 감독이 이겼다 ⓒgettyimages/멀티비츠 풋볼리즘 시리즈로 [풋볼리즘W]를 연재합니다. [풋볼리즘W]는 지구촌 축구(World Football)와 월드컵(World Cup)을 주제로 축구 팬들과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풋볼리즘W]를 통해 다뤘으면 하는 주제와 나눴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함께 하겠습니다. [풋볼리즘W]는 [풋볼리즘K]와 함께 격주로 여러분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탈리아 축구는 비토리오 포조 감독의 메토도 시스템으로 1930년대 두 차례나 월드컵을 제패했다. 상대적으로 이전 시스템보다는 수비 균형을 중시한 형태였지만 쥐세페 메아자, 지오반니 페라리 등을 앞세운 여전히 공격적인 전술의 하나였다. 메토도 시스템으로 이탈리아는 당대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는 그 이후 2차 세계대전과 아주리의 주축을 이루던 토리노 선수들이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사망하는 사건 등이 겹치면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탈리아 축구가 방향을 잃고 멈추어 있는 동안 헝가리, 브라질과 같은 팀들이 파괴적인 공격 축구로 세계 축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세계 축구를 선도해가던 입장에서 쫓아가야 하는 처지로 내려앉은 이탈리아 축구는 공격 축구라는 ‘같은’ 방식으로는 앞서 가는 팀들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출발선이 다르다면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란 접근이었다. 고민 끝에 이탈리아는 세계 축구 전술사에 한 획을 그은 엄청난 아이디어 하나를 내놓기에 이른다. 축구의 일반 명제를 뒤집는 역명제였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다’가 축구에 있어 명제라 할 수 있는데 이탈리아는 이를 뒤집는 ‘실점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는 역발상과 마주한다. 세계 축구사의 한 축을 수놓은 카테나치오의 시작이었다. 빗장 수비란 말로 풀이되곤 하는 카테나치오의 이탈리아 축구는 멀게는 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