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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설] 경향신문 제 21616호 (2015. 1. 26. 월요일) "오피니언 지면" pp.29~31.

[김형경의 뜨거운 의자]   김형경(소설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  " 타인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나, 만족감은 없고 공허함만 커져 일그러진 거울을 깨는 용기와 기성세대의 관용을 기대한다."   첫 시작은 소설가 김형경의 실제 경험이다. 그러나 두 문단이 지나고 나면 진정한 서론이 나온다. 아래는 그 서론의 일부분이다. (...)타인과 사회에 해가 되지 않고, 공동체의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고, 법에 저촉되는 반사회적 행동이 아닌 이상 나는 무엇이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래에 인용한 문장을 담은 문단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회에서 스승이나 어른으로 모셨던 권력자와 헤어지면서 스스로 진정한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선택과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참자기, 주체적 삶, 자기 삶의 주인 되기 등의 언어로 표현되는 삶의 내용들이다.   문단 하나를 인용하고자 한다. 내면에 주체성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공허감이다. 무엇을 해도 만족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럴수록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입장을 바꾸고,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행동을 변화시키고, 조직에 소속되기 위해 개성을 마모시킨다. 자기를 잃은 현대인들이 위험한 이유는 사회적 개인에서 일탈의 군중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은 외부 기준과 요구에 자기를 맞추느라 일그러진 거울 같은 자아를 갖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두 문장을 더 인용하고자 한다. 참자기, 주체적 삶, 자기 삶의 주인 되기 등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당사자의 용기일 것이다. (중략) 그보다 중요한 또 한가지 조건이 있다면 젊은이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관용이라고 생각한다.  명심보감의 해당 구절이 떠오른다. 아래에 있으며, 正己篇에 있는 내용이다.  子曰 三人行,...

[신문사설] 경향신문 제 21600호 (2015. 1. 7. 수요일) "오피니언" 지면 29~31쪽

[서민의 어쩌면] 반어법 사용의 극(極)을 달림. [소소한 풍경] 녹전면(祿轉面)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한 고마운 글이었음. [표창원의 단도직입] '특정 반인권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입법과 '검시권'을 법의관에 게 이관하는 '검시제도'의 확립을 지지함. 《신주무원록》, 《증수무원록》, 《증수무원록대전》 [조국의 밥과 법] 능력이 정의다 ☞ 메리토크라시(능력자 지배 체제) 사회귀족 ≠ 정치귀족, 법복귀족 // 계몽귀족 노블레스 오블리주 [옛 글에서 읽는 오늘] 《열하일기》첫 기록 '後三庚子' 여기에서 '庚子'는 1780년을 가리킨다(庚子年). 그리고 '後'는 어느 시기의 다음인가? 바로 "崇禎記元後"를 말한다. '崇禎'이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의 연호를 일컫는다. 이 사설의 마지막 부분의 단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숭정이란 연호는 왜 숨겼는가? 장차 압록강을 건네게 된 때문이다. 지금도 이 의문과 답변의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餘滴] 첫 단락 모두를 인용해봅니다. 사람의 뒷모습이 슬픈 것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때는 본심을 숨기거나, 꾸밀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등을 보일 때는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제는 남남이 된 채 멀어져가는 연인이나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늙은 부모의 뒷모습이 슬픈 것은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진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답이다》- 신광호 "힐링코드.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