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日帝 彈壓에도 꿋꿋했던 한글學會…"오늘날이 더 苛酷"
[국어死전… 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4) 사전 빠진 문화융성정책
국어사전과 한글학회에는 일제강점기보다 오늘날이 더 가혹하다.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문화 말살 탄압을 겪으면서도 세상에 나왔던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은 20년 넘게 개정판을 내지 못하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이니 사전 생명력이 거의 소진한 셈이다. 한글학회는 개정판 발행으로 큰사전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길 바라지만 돈 문제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국어사전다운 국어사전을 만들었다”
우리말 큰사전은 천신만고 끝에 1957년 완간된 국어대사전의 선구자 ‘조선말 큰사전’의 뒤를 잇는 대사전이다. 조선말 큰사전이 발간된 지 10년 만인 1967년부터 정부 보조금을 받아 5년 동안 30만어휘 규모로 편찬이 기획됐다. 편찬 목표는 오로지 ‘국어사전다운 국어사전’이었다. 이후 정부 지원금 확보가 순조롭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79년 본격적인 편찬이 시작됐다. 그런데 발간 막바지인 1989년 큰 난관이 생겼다. 1980년 한글학회에서 내놓은 ‘한글맞춤법’을 당시 문교부에서 1989년 개정한 것이다. 새 맞춤법에 맞도록 수정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우리말 큰사전은 1991년 40여만단어, 5700여쪽(부록 포함 4권) 분량으로 세상에 나왔다. 역대 국어사전 중 최대 규모였다.
출간 자리에서 한글학회는 “조선말 큰사전 이후에 수없이 출간된 한글 사전들은 필요없는 외국 지명은 물론 고유명사, 잡지 이름과 일본식 한자어까지 그대로 싣고 있는 등 진정한 한글 사전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며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말 큰사전은 국어사전다운 국어사전의 모습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심 가득한 평가를 내놓았다.
당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5층짜리 한글회관은 한 층도 빠짐없이 한글학회가 사용했으며 상근 근무자는 50여명에 달했다. 현재 국립국어원보다 규모가 컸을 정도의 전성기였다.
◆단 4명뿐인 한글회관, 23년째 뇌사 상태인 큰사전
한글학회 전성기는 역설적으로 1991년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이 문을 열면서 막 내렸다. 정부가 한글학회에 대한 지원을 끊었고 국어정책이 국어원 중심으로 수립·집행되면서 한글학회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
우리말 큰사전의 저조한 판매 실적도 재정에 부담이 됐다. 최소 7번은 다시 찍어야 투입예산을 회수할 수 있는데 초판 인쇄가 끝이었다. 한글학회 식구는 점점 줄어들었고 사전을 개정할 여력도 사라져갔다.
그나마 1996년 2월 우리말 큰사전을 모태로 한 국내 최초의 전자사전인 ‘한글 우리말 큰사전’이 나왔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이 사전은 1996년 10월 수정판을 낸 뒤 경제적 이유로 ‘절판’됐다. 이후 우리말 큰사전 개정은 엄두도 못낼 처지다. 현재 23년째 개정이 미뤄지고 있다. 직원은 4명으로 줄었다.
언제쯤 쓸 수 있을까 서울 종로구 한글학회 사무실에 있는 ‘우리말 큰사전’ 표제어 카드. 한글학회가 사전 편찬 작업을 재개하면 사용할 것들이지만 자금난으로 편찬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
한글학회는 여전히 우리말 큰사전 개정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성기지 한글학회 학술부장은 “여러 대기업을 접촉했지만 모두 사전 편찬에 별 관심이 없었다”며 “(학회 회원이) 대부분 학자들이어서 자금 지원을 확보할 창구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언제일지 모르는 개정을 위한 작업은 쉼없이 이어져왔다. 우리말 큰사전을 밀어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여러 문제점을 해소한 사전을 내놓겠다는 방향도 잡은 상태다. 가령 표준국어대사전은 ‘푸른 하늘’이라며 궁창(穹蒼), 벽공(碧空), 벽락(碧落) 등 쓰는 이 거의 없는 단어만 17개나 등재했을 정도로 ‘유령어(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 표제어 숫자를 늘리기 위한 단어)’가 많다는 것이다. 또 온전한 돌이라는 의미의 ‘온돌’을 ‘온(溫)돌’로 표기하는 등 오류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 확보는 큰 벽이다. 큰사전 개정에는 최소 10년 동안 20명이 달라붙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성 부장은 “1인당 연봉을 4000만원만 잡아도 1년이면 8억원”이라며 “10년 동안 8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든다”고 말했다. 국어·사전학계에선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글전용을 주장해온 한글학회 큰사전에 ‘국어사전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야 할 사전이라는 얘기다. 성 부장은 “수천년간 조상들이 쌓아온 문화 알갱이가 언어이다. 언어를 이 시대에 사용할 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어느 곳에 사용해야 하는가를 제시해 주는 것이 국어사전”이라며 “국민에게 국어를 사용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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