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서평] 중화만리 中華萬里 (김영우)





   <<중화만리>>의 책표지의 그림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다. 금괴가 보이고 금화도 보인다. 수박도 보이고 빨간 두건이 아니라 삼각건을 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가운데 노란 넥타이를 맨 사람이 보인다. 우리가 한 번 쯤은 보았을 <최후의 만찬>의 구도와 매우 흡사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다 읽고 난 후 '작가의 말' 부분을 통해 표지의 그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曾梵志(쩡판즈)의 <최후의 만찬>이었다. 이 작품은 1990년대 중국의 자화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작년에 '中華'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물론 대다수가 단행본 혹은 논문이었다. 그리하여 올해가 들어서고 새 학기가 시작되고서부터 다시 해당 자료를 찾고 싶었다. 최신의 그것으로 . 그래서 대학 도서관에서 '중화'라고 검색하였는데 못보던 단행본 하나가 검색 결과의 가장 윗 부분에 위치하여 모니터 화면을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상세히 알고 싶어서 클릭하여 들어갔더니 장편소설이라고 가장 먼저 알려주고 있어서 '당장 배제해야겠다'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러나 '학기 초인 만큼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때 소설 한 권 쯤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회의가 들어서 읽기로 결정하였다.

  첫 시작이 '중국 하북성 진황도(秦皇島)시' 이러하다. '진황도'란 지명은 처음 들어보았다. 첫 시작부터 모르는 것이 나와서 이 책을 읽어도 괜찮겠다고 확정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주리용'이다.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다. 현대판 홍위병으로서 사명을 다하는 '주리용'을 소설 속에서 면밀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楊開德(양카이더)'라는 인물이 언급된다. 이 사람은 책표지 속 가장 중앙에 위치한 탐관오리의 절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곧이어 주리용의 딸도 언급된다. '朱梨美(주리메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주리용이라는 '현대판 홍위병'으로 불릴 만큼 지독한 공산주의자와는 완전히 반대로 그의 딸 '주리메이'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인물로 나온다.

   이미 하나의 중외합작회사를 중국의 손아귀로 만드는 데 성공하는 주리용과 양카이더 일당은 한중합작회사인 '진황도봉봉전력유한공사'를 온전히 중국의 기업으로 만드련ㄴ 작업이 개시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솔직히 읽는 내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표현처럼 일반인 아니지 정상인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악행만 보인다.정말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다행히도 '권선징악'의 결말이 드러나고 있었고 아주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중국이란 나라를 제대로, 그러니까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것이 2013년 성탄절 직후부터다.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터넷을 이용하여 중국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중국을 배우고 익혀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책에서 접했던 중국과는 정말 다른 나라임을 단번에 느꼈다. 아직은 아니지라고 여기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말 냉혹할 정도로 객관적이고 정확하다. 중국의 여러 방면의 수준은 이미 전 세계의 정점을 찍기 직전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꾸준히 유지될 전망이다. 중국은 그 많은 인구가 미래를 향해 일치단결하여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 더욱 무섭고 놀랍다.

    홍콩과 대만은 어떠한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도저히 약 13억의 중국인들이 긍정적인 사이클. 즉 선순환을 가진 채 굴러가기 시작하고 있는데 홍콩과 대만이 웬말인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미국도 어찌할 수 없는 역사상 초대형 단일 국가의 중국을 볼 날이 얼마 안 남았다.

    필자 '김영우' 작가는 맨 마지막 소설을 아래와 같이 말하며 이 소설을 마무리 지었다.
'과거는 미래에 대한 가장 좋은 예언'이라는 바이런의 말처럼 이 시기 중국 공산주의 극좌파가 벌이는 중화사상 이야기가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과 중국에 도전하려는 젊은이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한다.
    과거의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된 그리고 발전하고 있는 중국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에전처럼 일본이 고속성장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가는 또다시 '일제강점'과 같은 받아들일 수 없는 치욕을 다시 겪게 될 것이다.

   단순하게 정의가 이긴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의는 명백하게 피, 즉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성립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어, 중국 문화, 중국 문학, 중국 경제 등등 중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되어서 중국을 꿈을 이루는 데 적절히 이용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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