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周星馳)가 論하는 사랑

一萬年太久,只爭朝夕。
"만 년은 너무 길잖아. 당장의 아침과 저녁만이라도 쟁취할 거야."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주성치가 사랑에 대하여 논하였다.
그의 장기(長技)인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1994년 '大話西遊'라는 한 영화에서 주성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 '大話西遊'는 서유기(西遊記)를 가리킨다.




“曾經有一份真摯的愛情擺在我的面前,我沒有珍惜,等到失去的時候才追悔莫及,人世間最痛苦的事情莫過於此。
예전에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사랑이 내 앞에 놓여있었던 적이 있어.
나는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그 사랑이 놓칠 때가 되어서야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버렸지.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괴로운 일들 중 이것이 가장 아프고 괴로운 일이야.

如果上天能夠給我一個重新來過的機會,我會對那個女孩子說三個字:我愛你。
    만약 하느님이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나는 그때로 돌아와 그녀에게 세 글자만 말할 거야.
사랑해

如果非要給這份愛加上一個期限,我希望是,一萬年。”
만약 나의 이 사랑에 유효기한을 추가해야 한다면, 나는 1만 년으로 하고 싶어.

필자는 92년생으로 대한민국에서 홍콩 영화의 유행이 이미 막을 내린 뒤에야 홍콩 영화들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2014년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후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 필자는 제대로 홍콩 영화와 대만 가요 등에 눈을 뜨게 되었다.

一生所愛, 우리는 '일생소애'라고 읽는 이것은 '한 평생을 가지고 사랑한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일생소애'라는 어구는 노래 제목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다.
사실, 일생소애의 전주만 들어도 주성치가 떠오른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다.


19년이 흘러 2013년에 51살의 지천명을 넘긴 주성치 감독의 영화 하나가 발표된다.
西遊 · 降魔篇

우리나라에서는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이라고 정식 수입했다.
우리말에 맞춘 제대로 된 번역은 '서유기 : 악마 정복편'이 되지 않을까.
악마를 때려잡으면서 서유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악(惡)의 무리를 정화시키는 과정이 주된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나라 측 영화 수입사에서 심오한 뜻이 있을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서유기라는 똑같은 소재를 사용했다. ​
그러나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9년이 지나서 주성치는 재해석을 담아냈다.
영화 포스터에 “一萬年太久,只爭朝夕。​” 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필자가 이번 포스팅 맨 앞에 배치시켰고 번역도 가미시켰다.

어렸던 영화계 스타(星仔)에서 영화계 대부(星爺)로 자리 잡은 주성치.
그는 2013년 영화에서 OST에도 변화를 준다.
1994년 영화 주제가인 일생소애 속에 가사 하나만 덧붙였다.

“從前直到現在,愛還在。”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랑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우리는 주성치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을까?

1962년 홍콩 구룡의 어느 빈민가에서 태어난 주성치는 7살이 되던 해, 헤어지는 부모 중 어머니를 따라 생활하게 된다.
집안 조건이 워낙에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한다.
내성적이었던 유년 시절의 그는 타인과의 교류 자체가 뜸했다고 한다.

9살이 되던 해, 주성치는 영화 하나를 보게 되는데.
이소룡의 영화를 보게 되고 그는 이소룡의 그의 우상(偶像)으로 삼는다.
자연스럽게 쿵푸(功夫)에 빠져들게 된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하나 있다.
쿵푸에 푹 빠진 주성치는 민간에 떠도는 단련법으로 오른손을 연마한다.
말이 연마지, 실은 고통을 주는 거였다.
이러면서 그는 배우가 되겠다는 뜻을 품기 시작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주성치는 찻집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전자제품 공장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19살이 되던 해, 그는 홍콩 무선 방송국의 예술인 양성소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당시 이곳은 주윤발 등을 배출한 곳으로서 영화인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아마 여기서부터는 다들 잘 아는 내용이라서 생략을 해볼까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1990년 28살이 되던 해, 주성치에게도 기회가 생깁니다.
영화 賭聖(도박 마스터)에 출연하고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이후로는 잘 아시다시피, 1994년 서유기를 찍고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
허나, 주성치에게는 가정이 없습니다.
그가 꾸린 가정이 없다는 얘기죠.

그의 첫사랑은 홍콩의 배우 나혜연(羅慧娟)이다.
그러나 1992년 9월에 헤어지게 되고.
그녀는 한 사업가에게 시집가게 된다.
2012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그녀의 나이는 고작 45세였다.
주성치는 죽기 직전에 조용히 그녀를 만나고 나옵니다.

어쩌면 2013년 그의 영화 포스터 속
"만 년은 너무 길잖아. 당장의 아침과 저녁만이라도 쟁취할 거야."
해당 구절은 그의 첫사랑인 나혜연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최근으로 돌아옵시다.
2016년 주성치는 영화 <美人魚 미인어>를 들고 다시 스크린에 돌아왔다.
필자는 당시 중국(中华人民共和国)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직접 영화관에 가서 관람했다.

항상 잔인한 결말을 연기했거나 연출했던 그가 2016년 영화 미인어에서는 두 남녀 주인공을 함께하는 걸로 결말을 맺는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영화들에서 보여줬던 참혹한 결말과는 180도 달랐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인어는 남성에게는 절망적인 동물이다. 인어 여인은 정말 아름답지만 하반신이 인간의 그것이 아니다.
남성과의 의식을 치를 수 없지 않으냐."

하지만 이것이 주성치에게 대수로울까?
아마도 주성치는 영화 미인어를 통해서 이런 걸 드러낸 건 아닐까?
“완벽한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사별로 끝나버린 모든 사랑에게 추모의 메시지를 던진다.”

<看見>에서 주성치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는 여기에서 한 기자의 물음에 답하는데.
기자 曰 : 왜 아직도 결혼을 못했나?

주성치는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아직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이어서 말하기를.

만약 나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할 겁니다. 벌써 50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아직까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홍콩 영화를 떠올리시는 분들은 중년의 나이를, 즉 부모님 세대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성세대를 포함해서 말이죠.
오늘 주성치의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꼭 그렇게 하십시오.
더 이상은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미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天空海闊 천공해활
글 : 김재형 金宰亨

참고자료 : 读者, 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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