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昭君을 대신하여 漢나라 황제에게 감사를 표하며 올리는 글. 개인 번역본 〈代王昭君謝漢帝疏〉 첨부

王昭君을 대신하여 漢나라 황제에게 감사를 표하며 올리는 글
개인 번역본 〈代王昭君謝漢帝疏〉 첨부

단순 제목만 보면 무엇인지 싶을 것 같아 먼저 본래의 제목을 소개한다. 〈代王昭君謝漢帝疏〉인데, 이를 직역하면 ‘王昭君을 대신하여 漢나라 황제에게 감사를 표하며 올리는 글’이다. 고대 중국어로 쓰인 이 글의 저자는 남송(南宋) 초기에 활동했던 문인 柳開(947~1000)이다. 제목 속 王昭君은 다름 아닌 고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 王昭君이다. 漢元帝 시절 인물이며 대략적인 생몰년도가 기원전 51년에서 기원전 15년이니 적어도 900년 후의 한 문인이 900년 전의 한 여인을 대신하여 쓴 글이 되는 셈이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가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지금은 딱히 학문에 뜻을 두어도 별 다른 방도가 없는 터라 심도 있는 접근은 따로 하지 않았다.

아래는 〈代王昭君謝漢帝疏〉의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작업한 word 파일을 jpg 파일로 전환한 것이다.



각주 처리한 중국어를 보면 〈代王昭君謝漢帝疏〉의 본문을 참고한 출처가 명시되어 있다. 비록 올해 2월 하순 귀국한 이후에서야 유심히 본 거라 공들인 시간은 현저히 적긴 하지만, 학문적으로든 어떤 방면으로 접근하든 다룰 내용이 풍부한 편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엄청난 논문이나 비평문 등의 작품이 뽑힌다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이렇게 간략하게나마 적고 보니 가독성과 활용성 측면에서 너무 떨어지니 아래에는 〈代王昭君謝漢帝疏〉의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순서대로 올린다.

〈代王昭君謝漢帝疏〉 원문

臣妾奉詔,出妻單于。眾謂臣妾有怨憤之心,是不知臣妾之意也。臣妾今因行,敢謝陛下以言,用臣妾之心無怨憤也。

夫自古婦人,雖有賢異之材,奇俊之能,皆受制於男子之下,婦人抑挫至死,亦罔敢雪於心?況幽殿廷,備職禁苑,悲傷自負生平不意者哉?臣妾少奉選,得列嬪御。雖年華代謝,芳時易失,未嘗敢尤怨於天人。縱絕幸於主,虛老於深宮,臣妾知命之如是也。不期國家以戎虜未庭,干戈尚熾,胡馬南牧,聖君北憂;慮煩師征,用惜民力;徵前帝之事,興和親之策;出臣妾於掖垣,妻匈奴於沙漠。斯乃國家深思遠謀,簡勞省費之大計也。臣妾安敢不行矣?況臣妾一婦人,不能違陛下之命也。

所以謝陛下者,以安國家,定社稷,息兵戈,靜邊戍,是大臣之事也。食陛下之重祿,居陛下之崇位者,曰相,宜為陛下謀之;曰將,宜為陛下伐之。用臣妾以和戎,朝廷息軫顧之憂,疆場無侵漁之患,盡繫於臣妾也。是大臣之事,一旦之功移於臣妾之身矣。臣妾始以幽閉為心,寵幸是望,今反有安國家,定社稷,息兵戎,靜邊戍之名,垂於萬代,是臣妾何有怨憤也?

願陛下宮闈中有如臣妾者,臣妾身死之後,用妻於單于,則國家安危之事,何足慮於陛下之心乎?陛下以此安危繫於臣妾一婦人,臣妾敢無辭以謝陛下也?

〈代王昭君謝漢帝疏〉 한글 번역문

신첩臣妾 황명을 받들어 흉노의 수장 선우單于에게 부부의 연을 맺으러 떠나옵니다。무리 지어 떠들기를 신첩이 원망과 분통의 마음을 가진다고 하는데,이는 신첩臣妾의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옵니다。신첩臣妾 오늘 출가出嫁하오니 감히 폐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 신첩臣妾의 마음에 원망도 분통도 없음을 밝히옵니다。

예로부터 부인이 될 자 아무리 덕행과 재능이 남다른 재목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특출나고 영험한 재능을 지녔을지언정 모든 것이 남자 아래에서 제약을 받사오니 억압과 좌절로 죽음에 이르더라도 어찌 감히 마음에서조차 씻어낼 수 있겠사옵니까?하물며 궁궐에서 갇혀서 오로지 폐하의 정원을 직장으로 섬기는 것이 어찌 비애의 상처를 자발적으로 평생 책임지기를 원하는 것이겠사옵니까?신첩臣妾 젊어서부터 폐하의 선택을 받들어 빈어嬪御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사옵니다。비록 꽃다운 젊음은 시들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젊음의 시간은 쉽게 흘러가오나 결코 하늘과 타인을 감히 원망해본 적이 없사옵니다。설령 황상에게서 은총이 끊겨서 깊은 내궁에서 허무하게 늙어갈지언정 신첩臣妾 이와 같은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따름이옵니다。전쟁과 포로가 끝이질 않아 전란이 식지 않을 수 있음을 원치 않기에 오랑캐의 말이 남쪽으로 내려와 방목을 하여 성현과 군자가 북쪽을 걱정하는 상황에서도 정벌을 위한 출사를 지겨울 정도로 생각하시면서도 백성의 역량을 사용해야함에 안쓰럽게 여기시어 선대 황제의 사례를 참고하시어 화친의 정책을 펼치려 하시니 궁궐 외벽에서 신첩臣妾을 꺼내어 사막에 있는 흉노에게 부인으로 보내시옵니다。이는 국가 차원에서 깊은 고민하고 멀리 내다본 계책이옵고 노동력을 적게 들이면서 비용도 절약하는 큰 걸 바라보는 계획이옵니다。신첩臣妾이 어찌 감히 이행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오늘 폐하께 감사하는 것은 바로 국가를 평안하게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고 병사와 무기에 휴식을 취하게 하고 변경에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고,이는 대신의 일인 줄 아옵니다。폐하로부터 두터운 봉록을 먹고 폐하로부터 숭고한 지위에 머무르는 자들이 있는데,상相이라 불리면 폐하를 위해 모략을 세우기 위함이옵고 장將이라 불리면 폐하를 위해 토벌을 하기 위함이옵니다。오늘 신첩臣妾을 오랑캐와 화친을 맺는데 이용하시어 조정에는 깊디 깊은 우려를 잠재우고 변방에는 어부가물고기를 잡는 듯한 약탈의 고난을 없앨 수 있사온데 신첩에게 최대한 엮기어 있사옵니다。이는 대신의 일이온데 홀연히 이 일의 당락이 신첩 한 몸으로 옮겨왔사옵니다。 신첩臣妾 굳게 닫아버림을 내면 깊숙이 염두해두기 시작하면서 은총을 바라옵고 오늘에 이르러 오히려 국가를 평안하게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고 병사와 무기에 휴식을 취하게 하고 변경에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명분을 가지옵고 후세에까지 꾸준히 알려질 것이온데 신첩臣妾이 어찌 하여 원망과 분통을 가질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서 궁궐 내 신첩臣妾과 같은 자를 다시 가지시기를 바라옵니다。신첩臣妾이 죽은 후 흉노의 수장 선우單于에게 부부의 연을 맺게 하여 국가의 안위를 도모하신다면 폐하의 마음에 다시금 심려를 끼칠 수 없지 않겠사옵니까?폐하께서 국가의 안위를 일개 부인인 신첩臣妾에게 엮어주시오니 신첩이 감히 폐하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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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문맥에 살린 번역 퀄리티를 내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애시당초 원저작자가 900년 전의 한 여인의 심정을 떠올려서 쓴 것이고 이 원문을 다시 한국인인 필자가 1000년이 더 흘러간 시점에서 1000년도 더 전의 고대 중국어로 쓰인 글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기에 생생하게 원문의 맛을 살려냈다고 자신할 마음은 없고, 다만 원문의 뜻을 위배하거나 담기지도 않는 의미를 억지로 가져다 붙인 것은 결코 없다는 건 자신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원문의 뜻에 충실했다는 표현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원문과 한글 번역문 대조를 통해 고대 중국어를 익히는 데에는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편의 글을 보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王昭君 한 명의 인물에게가 아닌 王昭君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동아시아에는 봉건 사회가 사회 주류를 이루는 게 다반사였고 이와 더불어 여성의 인권도 바닥을 치는 게 일상이었다. 어엿한 한 국가의 황실에서의 한 여인도 저런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황실 밖의 여인은 과연 어떠했을까? 대충이라도 상상이 간다. 아주 역한 화면이 떠올리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감사를 표하며 올리는 이 글이 정말 감사해서 올리는 글인지 아니면 황제가 한 국가의 안녕을 짊어지는 王昭君 자신에게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 올리는 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물론 필자 또한 원자자 柳開와 마찬가지로 王昭君이 흉노로 팔려가는 순간이든 그 이후이든 여하튼 모든 세월 모두 원한과 분통의 감정은 0.1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과연 댓글이 달리겠냐마는 혹여라도 드는 생각이 무엇이라도 있다면 반응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듭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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