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近過得還好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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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以往用中文來寫blog類似的都進行在Facebook上,只是偶爾會在Naver Blog裡還寫中文,畢竟Navere讀者是韓國人,寫中文根本上沒甚麼可進行溝通,而我漸漸發現還不少來我這「中文工坊」的韓國人或多或少看懂中文,因此我稍微願意寫中文下去。 當然啦,由於中文非母語,有可能出現錯別字,若發現,敬請多多指教我,其實我很期待喲! 雖然前一陣子臺灣也面臨「封城」的措施等防疫問題,但是臺灣一往如舊,正常上班,正常上課,2020年7月18日臺灣只有大眾運輸務必戴著口罩之外,很少會法律上要求你必戴口罩。只不過臺灣人平常身體不舒服,就會準備隨時戴口罩。密閉空間的確難以防疫,病毒本身也不分健康或不健康的人,2019年底開始流出來的新冠病毒(COVID-19)等各種病毒只想辦法攻擊人類等任何生物。說道疫情,不可避免想到祖國韓國的疫情,對此想說的太多了,無法講完,只是希望住在祖國的大家千萬不要輕易相信政府所說的發言,要相信的話,像臺灣、越南等防疫真正成功的國家所發佈的相關資訊。 在臺大校園裡步行中所拍的天空,雖然很熱,天空依舊甚藍,令人想起海洋~ 「重溫」這件事應該很多人都會有的,尤其是印象較深刻的餐廳,是不是? 今天臺灣進行普通公務員考試,因為有我的指導教授的事情,剛到考試院時,經過國家考場,同時想到明日唯一知己的韓國人他要參與Law School入學考試,希望他正常發揮自己的實力,明年順利考進他想要的Law School! 自己並非依靠網絡而賺錢,也沒有這種想法,然而越來越想與別人進行溝通,尤其用中文來交流,不過是知道時間未免太晚了。

현대 중국어 “差不多”와 胡適《差不多先生傳》, MC HotDog 《差不多先生》, 鄧紫棋《差不多姑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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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어를 구사함에 있어 “差不多”라는 표현은 다소 독특하다. 일찍이 중국 근대 문학의 대표 문인 胡適(1891~1962) 선생이 지은 《差不多先生傳》 문학 작품이 당시 중국 문단에 영향을 준 이래로 역대 중국 산문집에 꼭 거론되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이 전기(傳記)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다름 아닌 “差不多”라는 이 표현이다. 또한 “差不多” 표현은 華語樂壇[중국어 음악계]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는데, 2008년 발표된 대만(臺灣) 인기 래퍼 MC 熱狗[엠시 핫도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差不多先生》이 언어의 마술을 부렸고 2019년 7월 21일 홍콩(香港) 현세대 실력파 가수 鄧紫棋가 발표한 《差不多姑娘》이 다시 한 번 “差不多”를 재차 소환한다. 1. 현대 중국어 “差不多” 필자 개인적으로 현대 중국어 회화 속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일상 표현이 두 개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隨便”, 또 다른 하나는 “差不多”다. 특히 중국어를 중국 대륙에서 지정한 서울말인 「普通話」로 접하고 배웠다면 이 두 표현에 훨씬 더 익숙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전자 “隨便”은 ‘아무거나’, ‘맘대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표현은 비교적 교양 있는 버전의 “隨意”로 상위 호환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 “差不多”는 독보적인 표현임은 물론 생각보다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독보적이라는 이유는 해석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정도 작성하면 되나요?”라고 했을 때 “差不多”라는 답변이 되돌아온다면 대충 어느 정도 분량에 맞췄다고 여길 수 있다. 또 “자, 이제 ‘差不多’ 잘 시간이야”라고 하면 이때는 반강제적인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 열심히 창문을 닦은 후 “差不多了”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어떤 행위의 완성과 완료를 나타낸다. 또한 굉장히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한 점 또한 그러하다. 이와 함께 근대 중국문학의 대표 문인 胡適(18...

원문으로 읽는 당대소설(唐代小說) 심아지(沈亞之) <풍연전(馮燕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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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으로 읽는 당대소설(唐代小說) 심아지(沈亞之) <풍연전(馮燕傳)> 1. 들어가며  최근 <풍연전(馮燕傳, 이하 '풍연전' 표기로 통일)>에 관한 잘못된 내용을 전하는 블로그의 게시물을 보게 되었고, 이번 글은 이로 인해 작성하게 되었다. 분량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당나라 소설 중 하나인 <풍연전>을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네이버 블로그 캡처 2. <풍연전> 원문 및 번역  먼저 필자가 다룰 <풍연전> 원문은 2003년 난카이 대학교(중국 천진시) 출판사에서 출간한 《沈下賢集校注》 73, 74쪽의 원문을 읽고 직접 한자를 입력한 것이다. 해당 문헌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국립대만대학교 도서관 내 링크를 첨부한다. 그러나 이 원문 하나만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으므로 王夢鷗선생의 《唐人小說研究》와 《太平廣記會校》도 함께 참고해서 원문을 입력하였다. 위 도서의 서지 정보는 아래 우리 대학교 중앙도서관 링크로 공유한다. 《沈下賢集校注》  ,  《唐人小說硏究四集》  ,  《太平廣記會校(附索引)》 본문 :  馮燕者,魏豪人,父祖無聞名。燕少以意氣任,專為擊球鬭雞戲,魏市有爭財鬭者,燕聞之往,搏殺不平,遂沉匿田間。官捕急,遂亡滑,益與滑軍中少年雞球相得。  풍연(馮燕, 이하 '풍연'으로 표기)은 위(魏, 현재 중국 하북성에 위치한 도시) 지역에 거주하며 성격이 호방한 사람이고, 그의 조상에 대한 이름은 들을 수 없다. 풍연은 어려서부터 감정에 전적으로 임하였으며, 격구(擊毬, 일종의 승마 운동)와 닭싸움 경기를 했다. 위(魏) 도시의 시장에서 재산과 관련한 다툼이 생겼는데, 이 소식을 접한 풍연은 직접 현장으로 가서 격렬한 다툼 끝에 부정을 저지르고[살인], 곧 농촌으로 숨었다. 관청에서는 급하게 붙잡으려고 했고, 풍연은 활(滑) 지역으로 도망쳤고 활(滑) 지역 군대에서 어릴 적 같이 닭싸움 경기도 치르고 격구 운...

국적(國籍)에 관한 이야기 - 중화민국(中華民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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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사랑해서 우크라이나 국적을 완전 소거하고 중화민국 국적을 취득한 이루이샤[李瑞莎, Лариса Бакурова]에 대한 썰을 풀어본다. 이루이샤[李瑞莎,  Лариса Бакурова ], 위키 제공 루이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原為烏克蘭國民,父親為 烏克蘭人 、母親則為 希臘人 。 烏克蘭 敖德薩州立經濟大學 經濟學 碩士 。2013年獲得 中華民國永久居留證 ,至2016年 中華民國內政部 首次受理烏克蘭籍人士歸化申請,2017年確認喪失烏克蘭國籍後,2019年成功歸化 中華民國國籍 。 여성은 정말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치정(癡情)을 가지고 있다. 루이샤 중화민국 국적 취득, 구글 이미지 제공 루이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루이샤는 사랑을 위해 그리고 대만을 사랑해서 결국 2019년 1월 24일 대만인이 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5년이나 되는 세월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들리는 바로는 그녀가 중화민국 신분증을 손에 쥐었을 때 화장실로 가서 20분이나 폭풍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아마 그녀가 기뻐한 것이 자기 자신의 사랑만이 아닐 것이다. 그녀와 대만인 남편 사이의 딸에게 자기 가족 모두가 대만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강조했기 때문이다. 또한 신분증을 획득한 1월 24일이 자신의 또 다른 생일이라며 행복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페이스북에 중화민국 첫 여성 대통령인 차이잉원[蔡英文] 중화민국 총통께서도 축하의 답글을 남겼다. 페이스북 제공 페이스북 제공 또한 그녀는 타오위엔[桃園]시 용담 중학교[龍潭國中]와 쌍용 초등학교[雙龍國小] '의무체조(義務體操)' 과목의 교련(教練)을 맡게 되었고 타오위엔시의 시장도 그녀에게 따뜻한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외국인이 중화민국의 국민이 되려면, 일반적으로 3년의 시간이 걸...

臨津有感

臨津有感 作者:김부 식(金富軾) 秋風溺溺 [1] 水洋洋 [2]                가을 바람 쓸쓸하게 불고 강물 넘쳐 흐르네 廻 [3] 首長空 [4] 思渺茫 [5]            고개 돌리니 드넖은 하늘 펼쳐지고 희망은 아득하네 恨恨美人隔千里                         천 리나 떨어진 그대가 한스럽고 또 한스러워라 江邊蘭芷 [6] 爲誰香                     강변의 난초와 구릿대는 누구를 위해 향기를 품고 있으리 [1] 溺溺:沉沒。『文選·宋玉「高唐賦」』:「巨石 溺溺 之 瀺灂 兮,沫潼潼而高厲。」李善 注:「 溺溺 ,沒也。」 [2] 洋洋:盛大貌。『詩·衛風·「碩人」』:「河水 洋洋 ,北流活活。」毛 傳:「 洋洋 ,盛大也。」 [3] 同「回」。 [4] 長空:天空。天空遼闊無垠,故稱。元稹『諭寶』詩:「大鵬無長空, 擧 翮受羈絏 。 」 [5] 渺茫:時地遠隔,模糊不清。白居易『長恨歌』:「一別音容兩 渺茫 。」 [6] 白芷,香草名,也叫「辟芷」。辟芷:幽香的芷草。『楚辭·離騷』:「扈江離與辟芷兮, 紉 秋蘭以 爲 佩。」

五四文藝節 5·4문예절 <문예의 날>

필자 왈 "五四青年節源於中國 1919 年反帝愛國的 “ 五四運動 ” 。 中國青年及知識人學習 1919 年 3 月 1 日在韓半島進行過的抗日愛國運動 ( 後來稱之爲 “ 三一運動 ” ) 之後 , 搞定的愛國運動就是中國五四運動 。 兩場運動都是徹底的反對日本帝國主義運動 , 但中國的五四運動還有封建主義的愛國運動的意義 。" 五四文藝節   1944 年 ( 民國 33 年 )「 中華全國文藝界抗敵協會 」 將 5 月 4 日訂為 「 文藝節 」, 並於 1945 年的 5 月 4 日舉行首次慶祝活動 。 對日抗戰時期 , 國民政府原以 5 月 4 日為青年節 , 3 月 27 日為文藝節 。「 青年節 」 是慶祝 「 三民主義青年團 」 的建立而訂定 ,「 文藝節 」 則是為了 「 中華全國文藝界抗敵協會 」 而設立 。 直至 1940 年 , 國民政府才將 「 青年節 」 移至 3 月 29 日 , 來紀念 「 黃花崗之役 」 的烈士 。 「 五四文藝節 」 的訂定過程充滿了中國國民黨和中國共產黨之間的文化角力 , 其中包括了五四文化運動的正統繼承問題 , 以及 「 五四 」 詮釋權之爭 , 因此延遲至 1945 年才將 5 月 4 日訂定為文藝節 , 並由 「 中華全國文藝界抗敵協會 」 發表 〈 為紀念文藝節公啟 〉, 強調 「 五四 」 反封建制度壓迫 、 反帝國勢力入侵的精神 , 以及追求民主與科學的態度 , 為 「 五四 」 的精神內涵定調 。 雖然雙方曾經對於五四的文化精神有基本共識 , 但長期以來 「 五四 」 的正統地位與詮釋權都掌握在共產黨手中 , 國民黨對 「 五四 」 的態度經常是以避而不談的方式來處理 。 因此 , 戰後初期 ( 1945-1949 年 ) 的臺灣 , 國民黨官方沒有舉辦過任何關於 「 五四 」 的紀念活動 , 但在民間還是有許多紀念 「 五四 」 的文章 。 當時的臺灣文壇不論是本省籍或外省籍人士 , 都寫了不少文章來紀念 「 五四 」, 如許壽裳 、 王思翔 、 樓憲 、 張禹 、 楊逵 、 楊雲萍等人 , 都曾發表與 「 五四 」 相關的文章 , 使得 「 五四 」 成為不分省籍的共同話題 。 對外省籍作家來說 , 提倡中國 「 五四 」 文化精神 ...